푸드talk

푸드talk에서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굿푸드 만의 방식으로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음식풍경

김기석
2022-10-24

음식잡지에서 일하면서 남들보다 더 많은 음식점들을 찾는다. 지인들이 가끔 좋은 식당을 알려 달라고 하면 쉽게 답하기 어렵다. 좋은 식당에 대한 객관적 기준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그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똑 같은 음식이라도 어떤 상황에서 누구와 식사하는 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며,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식당은 아닐 수도 있다.

얼마전 서울대학교 병원에 정기 검진을 받기 위해 들렀다. 정기 검진을 위한 예약, 안내 절차는 매우 잘 짜여 있어서 수많은 환자들을 효과적으로 검사하고 진료한다. 오전 검사를 마치고, 오후에 진료를 받을 예정이라 병원 내에서 점심을 하게 되었다. 병원 안에 유명 브랜드의 식당과 제과점이 있었지만 병원 식단이 궁금해 일부러 구내식당에서 식사했다. 

구내식당인 만큼 가격은 저렴하고 음식 양도 꽤 많은 편이었다. 맛을 물어본다면 답하기 애매한 수준이었다. 모름지기 식사 시간은 즐거워야 한다. 하지만 맛보다 더 불편했던 것은 식당 벽에 붙여진 병원 노조의 각종 항의 메시지들이었다. ‘갓 지은 밥, 탱탱한 면’, ‘제한없는 반찬개수’, ‘도저히 못 먹겠다’, ‘저질식단’ 같은 메시지부터 보기 흉한 ‘음식 잔반 사진’ 등을 보면서 이곳에서 식사해야 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 의료 인력들의 마음이 어떨지 걱정이 앞섰다. 불편한 점심을 마친 의료진으로부터 진료 받게 되면 결국 그 피해는 환자들의 몫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지나친 기우인가? 

몇 년 전에 미식여행으로 핀란드에 갔을 때, 건축가의 안내로 핀란드 국민연금 공단 건물을 견학할 기회가 있었다. 직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에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도서관, 구내 식당, 휴게실 같은 직원들을 위한 복지 공간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실내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긴 북유럽 국가인 만큼 공간은 물론이고, 내부 조명과 시설, 집기들은 부러울 만큼 훌륭했다. 식당에서는 직원들을 위한 점심을 준비하는 중이었는데, 가장 뛰어난 풍경은 직원들이 식사하는 식탁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식탁들이 길게 이어진 구내식당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각각 분리된 4인용 식탁들은 대부분 창가에 배치되어 창밖의 풍경과 이어져 있다. 건축가의 설명에 의하면 식사하는 시간만큼은 업무에서 벗어나 편안하고, 쾌적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으로, 한 마디로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는 환경으로 디자인된 공간이란다. 

우리도 이런 환경에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부러움과 함께 미식이란 음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의 시간이었다. 좋은 식재료를 요리해서 맛있는 음식으로 만드는 일에 더해 그릇, 도구, 테이블, 조명, 식당의 공간 등 전체 환경을 음식과 조화되고 아름답게 가꾸는 일을 미식구성주의라고 한다. 그러한 일에 깃발 들고 앞장서 기준을 만들어 평가하는 매체들이 여럿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곳이 ‘미00’ 하는 가이드이다. 어떤 이들은 이 가이드가 화장실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도록 해 ‘화장실 가이드’라고 혹평을 하기도 한다. 핀랜드의 공공기관 구내 식당에서의 음식풍경은 그러한 평가기준을 가볍게 넘어선 것으로 생각되는 인간을 위한 행복 공간이라고 생각된다.

서울대학교 병원의 구내식당 문제는 비단 이곳 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대부분의 다른 곳들 보다는 조금이라도 낳은 환경일 것이다. 지금보다는 훨씬 더 좋은 구내식당이 되었으면 좋겠고, 그 영향이 다른 곳 들로 퍼져가면 좋겠다. 선진국이란 반도체를 만들고, 자동차를 만든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선진국은 사람들에 대한 배려에 앞서고, 그러한 것들을 구현하고, 실천하는 나라이다. 서울대학교 병원 구내식당이 4인용 식탁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아름답게 식사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